저는 피아노를 못 칩니다. 하지만 듣는 것은 매우 좋아하지요. 듣기 좋은 곡들 중에서 나도 쳐봤으면 좋겠다 싶은 곡 중 하나가 베토벤 비창 1악장 입니다. 원래는 2악장을 먼저 좋아했었고, 그 다음은 스타크래프트 음악으로 알려진 비창3악장, 최종적으로 1악장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특유의 강렬하면서도 뭔가 절제되어있는 느낌 사이로 빠져나오는 어둡고 비참한(?) 감정이 매력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 글에는 비창 1악장에 대해 적어보았습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1악장은 감성적 깊이와 강렬함이 공존하는 음악으로, 듣는 이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습니다. 서두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성적이고 차가운 울림은 고뇌와 절망의 분위기를 형성하며, 마치 냉혹한 현실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듯합니다. 이러한 차가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이유는 베토벤이 멜로디를 통해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희망의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무너져 내리듯 반복되는 화성 진행 속에서도 순간순간 섬세하게 펼쳐지는 멜로디는, 인간의 깊은 감정을 어루어 이 곡을 듣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Piano Sonata No.8 op.13 1.Grave

우울한 곡

이 곡이 우울하게 느껴지는 것은, 주로 C단조의 어두운 색채와 그 안에 숨겨진 긴장감 때문입니다. 첫 주제에서 베토벤은 강렬한 리듬과 단조 화음을 통해 강한 감정적 울림을 전합니다. 이는 당시 베토벤의 개인적인 고뇌와도 연결됩니다. 작곡 당시 베토벤은 청각 문제로 인한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이는 그의 음악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그 나약함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베토벤이 살았던 시기는 나폴레옹의 영향으로 정치적 불안이 가득한 시기였으며, 이 역시 곡의 어두운 감정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창’ 1악장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베토벤의 또 다른 작품으로는 교향곡 5번, ‘운명’의 첫 악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곡 역시 C단조로 쓰였으며, 강렬한 리듬과 극적인 전개, 그리고 절망 속에서의 투쟁이라는 주제를 공유합니다. 두 곡 모두 운명에 대한 도전과 인간의 끊임없는 저항을 그리고 있어, 어둠 속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강한 정신력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청자에게 희망을 전달하고, 강렬한 감정을 일깨우는 것이 이 곡들의 공통된 특징입니다.


베토벤과 C단조 (feat.모차르트)

베토벤이 C단조를 자주 애용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4번(C단조)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협주곡은 강렬하고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가진 곡으로, 베토벤은 이 곡의 감정적 깊이에 매료되었고 이후 자신의 작품에서도 C단조를 자주 활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C단조는 베토벤에게 있어서 내적 갈등과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조성이었던 것입니다.